창세기 강해

흙이 생명을 얻다(3)①

박성산 목사 2024. 2. 27. 20:24

흙이 생명을 얻다(3:13-21)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 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 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 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 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 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 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 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오늘 본문 창 3장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벌을 내리시는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좋으신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예를 들자면 자식이 아버지를 대할 때 나쁜 짓을 해도 눈감아주고 넘어가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좋으신 분으로만 알고 있어서 나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게 해 주시는 그런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서두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좋다라는 단어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아주 인간적인 생각으로 오해한 사람이 바로 조모라는 목사입니다. 우리나라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중에서 그분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만나도 저런 목사님이 되어서 큰 교회를 짓고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오늘날 교회의 현주소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것은 어떤 사람의 영향이라기보다 우리들의 타고난 본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시고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피조물은 피조물의 말을 듣기보다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되는데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생각에 비록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을지라도 용서해 주시고 다음부터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타일러 주시면 얼마나 좋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용서도 없이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시고 남자에게는 평생 저주받은 땅에서 땀을 흘리고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게 하시고 여자에게는 아이 낳는 고통을 주시고 결국 마지막에는 다 죽게 만드는,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가혹한 형벌을 주셔야만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사랑과 자비도 없고 냉정한 그런 하나님이 너무하시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창 320절입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전에는 아담이 자기 아내를 그냥 여자로 불렀는데 죄를 짓고 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난 후에는 생명이란 뜻을 가진하와라고 부릅니다.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저주를 받음으로 흙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아내의 이름을 죽음이 아니라 생명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일인데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가 될 만한 가능성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있을 수가 없는 불가능한 가운데서 신앙이고 진정한 믿음인 줄 믿습니다.

 

11장을 보시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즉 눈에 보이는 이 땅이 아니라 비록 보이지 않지만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창 1장에서 하나님이 천지 창조하실 때 저와 여러분이 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본 적이 없지요.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믿음이라는 눈으로 보면 성경 말씀이 일점일획이라도 틀린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되어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심을 믿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인간의 의지나 신념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셔야 믿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이때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생스러운 인생을 살아야 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아담은 도대체 어떻게 자기 아내의 이름까지 생명(하와)이라고 지었을까요?

 

그것은 아담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증거인 믿음을 얻었기 때문에 그 증거로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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