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예수 그리스도(1)

박성산 목사 2015. 7. 20. 00:34

예수 그리스도(1)

<마태복음 1:1-6>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 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 몬을 낳고

 

 

 오늘부터 마태복음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얼마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신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이외의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두 우리 주님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 앞에 마태복음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마태복음은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그 사이에 놓여있습니다. 창세기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친히 창조하셨다는 내용이고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들어놓은 세상을 다 없애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새로 만들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받아서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살게 하신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삼기 위하여 오직 유일한 방법으로 삼으시는 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우리의 심령을 건드려서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말씀밖에는 없다고 성경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게 되면 "내가 전해주는 이 말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능력이 되셔서 말씀이 들어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중에 오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장난감은 아무리 밀쳐도 다시 오뚝 선다고 해서 오뚝이입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자신을 괴롭혀도 이 오뚜기는 곧바로 섭니다. 왜 그럴까요? 그 중심에 무거운 쇠조각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와 같습니다.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는 사람은 그 어떠한 환경에서도 오뚝이처럼 중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렇게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할 때 우리가 살아오면서 무엇인가 내세울 것이 있나? 없나?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뚜기를 흔들어보듯이 우리 안에 "뭐가 들었나?"하고 흔들어보는 것으로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즉, 중심에 성경말씀이 있나 없나를 보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이 관계를 달리 설명하기도 합니다.

롬 7:2~3에 보시면 성도를 신부로 봅니다. 이것은 신부는 신랑에 따라 운명이 확정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구약시대에는 아내가 남편을 "주여"라고 불렀습니다(벧전3:6).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불렀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모든 구원받는 사람의 신랑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우리가 남편으로써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남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진실로 믿는다고 한다면 더 이상의 염려나 고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신부가 맞다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보다 신랑을 든든히 믿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신앙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에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를 보고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신랑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천국에 인도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잊으시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말씀에서 “그리스도”라는 말씀에 주목을 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본문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의 세계라"라고만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뭐가 빠져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빠져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를 단순한 보통 인간으로 취급한다면 예수님은 그저 4대 성자의 반열에 서 있는 한 사람일 뿐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신자도 이런 의식을 갖기 쉽습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한평생 남을 위하여 희생하며 살고 싶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는 단지 모범적인 성자 정도일 뿐입니다. 그야말로 전적으로 우리의 모든 미래와 운명을 대신 책임지시는 분, 남편 되시는 분, 주가 되시는 분이 아니라 그저 본받아야 될 훌륭한 사람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이웃 사랑을 베풀고, 헐벗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는 것이 보람된 삶을 사는 것이다"라고 신념을 가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자기 자신의 위대함 뿐입니다. 스스로 위대해져서 그 공로로 천국마저 통과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용납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성경에 나오는 한 예를 들겠습니다. 열왕기하 2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나오는데 세상을 떠날 때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이후에 이상하게도 시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려온 불수레와 불말에 의해서 산채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그동안 엘리야가 행한 그 많은 일들은 결코 엘리야의 능력이나 재주에 의해서 이루어진 차원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 세상의 모든 문제는 결코 인간들 선에서 해결이 되지 않고 오로지 하하나님의 손에 놓여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학이나 의학이 아무리 번창해도 그것으로 인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린 엘리야 그리고 가뭄 끝에 비를 내리게 한 엘리야의 일은 모두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생겨난 땅의 현상입니다. 그 엘리야가 행한 모든 역사는 엘리야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서 확연히 드러난 것입니다. 엘리야의 시신을 그의 제자들이 아무리 찾으려고 애를 써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의 시신이 있었더라면 그를 우상으로 섬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에 대한 답은 마태복음을 보면 나옵니다. 마17:3~4에 보시면 예수님이 잠시 제자들에게 천국의 일부를 보여주셨는데 거기에 보니까 엘리야와 모세가 같이 나타났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둘 다 하나님과 접촉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족보를 이런 차원에서 보셔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하나님과 접촉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접촉이 가능할까요?

빌2:6~8에 예수님께서 낮아져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의 죄로 인해 낮아질 수 있는 그 한도보다 더 낮아진 위치까지 스스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은 죄의 무게 때문에 주저앉게 된 저주로 인한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죄의 무게 때문에 지하 5층에서 주저 앉아있다면 주님은 지하 6층에서 우리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만약에 지하 20층 바닥까지 내려갔다면 예수님은 지하 21층에서 우리를 지탱하고 계십니다.

우리 자신도 어찌 할 수 없는 엄청난 죄의 무게 때문에 질식할 지경에 놓여 있다하더라도 예수님은 그 현장에 나타나셔서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막2:17에서 "나는 결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듯이 나는 병든 자를 찾기 위해 왔단다. 나는 죄인을 찾아 구원해주려 왔단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인물들만 나열해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등등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등장했던 자입니까? 모두다 하늘에서 누군가 오셔야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된 인물들입니다.

 

단순한 혈통에 따라 나열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면 결코 나타날 수 없는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나 우리들이나 사실 모두다 죄인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죄인들을 하늘에서부터 개입을 함으로써 그리스도라는 하늘 쪽으로 인도함을 받게 하십니다. 마치 엘리야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하늘에서부터 개입을 받았다는 의미는 이들의 일생에 이미 그리스도가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야 자기편으로 끌어당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개입이 들어있지 아니하면 성도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개입하실까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주'로 '그리스도'로 인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예수님이라는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자녀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관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각자의 주어진 인생이 서로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어떠한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주'라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그 분이 우리를 하늘로 이끄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손만 붙잡고 있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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