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과거의 예수님을 아는 자와 현재의 예수님을 믿는 성도(15)

박성산 목사 2015. 11. 1. 22:47

과거의 예수님을 아는 자와 현재의 예수님을 믿는 성도(마5:10-12)(15)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 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 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산상수훈을 보면서 진정한 복은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의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는내가 무엇인가 하면 한 만큼 댓가를 바라고 얻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해위나 공로를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심령가난부터 화평을 이루어야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인간의 노력으로 복을 받으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것을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한 심령가난부터 화평의 복을 받지 않은 사람은 그 자체로 예수님을 핍박하거나 욕을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의가 없는 사람은 자기의 의를 드러낼 수밖에 없어서 예수님과 반대의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나를 드러내는 '나의 의'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을 핍박하거나 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과거의 예수님으로 알고 있는 자와 지금도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지금 살아있는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과 친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훌륭한 사람들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무리 잘나고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지금 이 세상에 없고 과거의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3:20에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여기에 보면 예수님은 과거나 현재에나 미래까지도 항상 살아계시는 분으로 나와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하고 함께 사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은 한 시대를 살았던 과거의 어떤 분의 업적을 뒤적이면서 그 흔적을 연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현재) 영생이신 분과 실제적으로 만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생 안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은 본인 말고 다른 누구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보통 관계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아주 각별한 사이일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2000년 전의 과거 인물로만 여기고 관심을 가지는 것을 예수님과 현재 만나고 있는 것이라고 보기가 힘들 것 입니다. 더더구나 과거의 그 분을 위하여 현재에 내가 손해를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핍박을 당하거나 욕을 얻어먹을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 에수님과 우리가 함께 살아서 서로 만나고 있다고 한다면 "나를 위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라는 말씀이 실제의 사실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신다고 믿고 있다면 이 예수님을 내가 핍박을 당하거나 아니면 핍박하는 것이냐가 실제의 삶에서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핍박을 당하거나 아니면 핍박하느냐는 내가 천국 백성이냐 아니냐를 알려주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말씀은 10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의를 위하지도 않고 또 의로 인하여 주어지는 핍박도 받지 않으려는 사람은 결국 천국 백성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과연 '예수님에 대한 핍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누구든지 지옥에 가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천국은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이니까요.

 

이것은 예수님이 육체로 이 땅에 오셨을 그 때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모두 자신들이 천국 백성이라고 자부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님의 법을 전혀 모르고 또한 듣지도 못한 이방인들에게 갑자기 성령이 임합니다.

 

이것을 보고 예수님의 사도들은 그제서야 '구원은 율법과 상관없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곧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얻는 것이 곧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철저하게 유지하려고 했던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그동안에 했던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만 것입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사울입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로 바뀐 사람입니다. 이 사람도 역시 철저히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다메섹으로 내려가다가 갑자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에게서 예수님은 지금은 죽고 없는, 과거에 살았었던 그런 사람에 불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현재 만나고 있는 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생각에는 예수님은 과거에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을 잡아 죽여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분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바로 그때에 사도 바울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거듭난 것입니다. 바뀌어졌다는 말씀은 인격이 변했다거나 거룩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은혜를 증거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과거에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라고 자부했고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은 철저하고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면서 그 법대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제자들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고방식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었고 죄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받았으니까 이제부터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성화를 이루어야한다는 사고 등등은 이미 그는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하는 사고와 행위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가 아닌 인간의 의를 내세우는 모든 행위들은 바울의 생각과 똑같은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자기의 의를 내세울 수 있을까요?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주님께 감사하면서 삽니다. 부족한 것을 채워서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을 만나주시는 예수님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러면 율법도 모르는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법을 초월하면서까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를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엡2:1-2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여기에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지금 공중의 권세잡은 자에게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지옥이란 천국과 사이에 두고 내 마음대로 골라서 갈수도 있고 혹은 싫으면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일은 자기 선택에 의해서 결과가 얻어지는 것입니다만 천국과 지옥은 인간의 선택과 상관없습니다. 천국 안가고 지옥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지옥으로 끌려갈까요? 그것은 지옥으로 끌려가서 지옥행이 아니라 원래부터 지옥이라는 우물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배권을 쥐고 있는 어두움의 힘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엡2:3-5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우리도 지옥에서 살다가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 지옥의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날 때부터 눈도 안보이고 귀가 막혀서 안 들렸습니다.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그는 부모를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세상을 한탄하며 살았습니다. 그러기를 어언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분이 찾아와서 그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는 너무 놀라고 기뻐서 그 이후로 병을 낫게 해 주신 분을 고마워하며 자랑을 평생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물론 제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이와같이 천국 백성은 예수님의 긍휼로 인하여 지옥의 우물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에 빠져 나와서는 예수님의 긍휼만 이야기할 뿐입니다. 물론 이들도 핍박을 받겠지요.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예수님을 인하여 욕을 얻어먹고 핍박을 받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영생은 무엇을 지키고 어떤 사람을 믿고 사귀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과의 만남에서만 오는 줄 믿습니다. 그 분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바울을 만났던 그 예수님이 지금 이 자리에도 계셔서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인하여 핍박과 욕을 당함은 괴로운 일이 아니라 참 즐겁고 기쁜 일인 줄 믿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을 만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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