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세례 요한과 헤롯왕(84)②

박성산 목사 2017. 5. 8. 16:31

세례 요한과 헤롯왕(마14:1-12)(84)②

 

 

1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 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 다 하더라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 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 지 않다 하였음이라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 중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 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 거늘

8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 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 하여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 게 가져가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만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에 있는 죄인까지도 함께 인도하시며 일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치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가 출애굽을 할 때에 바로왕의 마음을 강팍하게 했다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왕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 만드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만 나타내시기 위하여 이러한 체계를 하나님이 다듬어 가시는데 예수님 편에서만 일하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마주치는 죄인이나 택한 백성 편에서도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세례요한을 마주치고 있는 헤롯왕 편에서도 일을 하시는데 그의 생일을 맞이한 날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6절에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에서 춤을 아주 아름답게 추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헤롯은 그 춤추는 모습을 보고서 마음이 흡족하여 딸에게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엄청난 말실수를 합니다. ‘나라의 반이라도 주겠다’고 말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사람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살게 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옳은 것은 반드시 이행을 하고 그른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저나 여러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늘 기분대로 살지요.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저도 어릴 적에 어머니에게 용돈을 타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한 적이 있는데요. 제일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얼굴을 살피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으신지 안 좋으신지를 말입니다. 기분이 좀 안 좋으신 것 같으면 아예 용돈받는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만 기분이 좋으신 것 같으면 용돈이야기를 꺼내기가 수월합니다. 그러면 거의 용돈을 주십니다.

 

사람은 자극적인 것이 없으면 권태를 느끼기 마련입니다. 가난한 사람들보다 부자가 권태를 많이 느낄 수밖에 없는데요. 만약에 자기에게 예상치 못한 어떤 자극이 왔을 때 순간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립니다. 곧 이성을 잃어버리고 감정에 따라 움직입니다. 헤롯왕이 그런 감정에 따라 마구 움직였던 것입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맙니다. 헤롯은 한 나라의 왕입니다. 그 당시에는 왕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었습니다. 만약에 왕의 말이 법으로 서지 않으면 반란과 내란이 생겨서 나라의 질서는 허물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곧 왕의 지위에서 박탈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왕이 공식석상에서 내뱉은 말은 어떠한 경우라도 변경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로디아의 딸은 왕의 말을 듣자마자 자기 어미에게 가서 상의합니다. 그러자 헤로디아는 나라의 절반을 달라고 하라든지 물질을 많이 달라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가져오게 하라고 딸에게 지시를 합니다.

 

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하필 세례요한의 목을 요구할 만큼 헤로디아에게는 절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헤롯왕과 헤로디아가 결혼하기 전에 세례요한이 잘못된 결혼에 대해서 비난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본래 헤로디아는 헤롯의 제수씨입니다. 동생의 부인인 것이지요.

 

백성들이 비난하는 것과 세례요한이 비난하는 것은 차원이 틀립니다. 세례요한은 선지자로서 백성들의 정신적인 지주입니다. 정치나 행정은 왕이 하지만 백성들의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가 왕에게 그 결혼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은 왕의 가족전체가 백성들에게 쫓겨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왕의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로디아는 세례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죄를 지은 것에 대하여 지적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인이 아닌 훌륭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인데 누군가가 자기에게 죄를 지적하면 지적받은 자기가 싫거나 미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지적한 사람에게 앙심을 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과거부터 계속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 위해서 자기의 죄를 지적한 사람을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헤로디아가 앙심을 품고 있다가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너무나 아름답게 춤을 추는 바람에 헤롯왕이 이성을 잃어버리고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딸은 왕에게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와같이 앙심은 살인을 저지르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세례요한을 예수님이라고 비유하고 헤롯왕을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올 때에 항상 선한 사람으로 나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는 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가 예수님을 극도로 미워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완전히 벌거벗기듯이 죄를 들추어내십니다.

 

그때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주여 떠나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한다면 성령께서 임한 성도입니다만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불만을 갖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해 왔는데 제게 해주신 것이 뭐가 있습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해왔는데 제게 왜 이러한 어려움이 있어야 합니까?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무언가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따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충성한 것에 대한 보상을 주셔야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보기에도 좋을뿐더러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가 있지 않느냐고 협상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짜 신자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불만을 예수님에게 쏟아 붓기 바쁩니다. 은혜라는 것은 손톱만큼도 모르고 자기의 잘난 것만 부각시켜서 그것을 빌미로 하나님께 복 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죄인들의 본성입니다.

 

내가 지금 존재하기 때문에 더 잘살아야 하고 이왕이면 왕이 되게 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는 사람이 혹시 우리가 아닐까요? 이러한 고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죽어서는 천국에 가야한다고 우기고 있다면 누구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고 예수님 십자가의 피가 묻혀진 성도에게서 나오게 되는 고백은 ‘나는 죄인이로서 진작 죽었어야 하는데 그동안 살아온 것도 기적이구나.’를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그에게는 은혜입니다.

 

과거에는 내가 존재함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나와 관련된 일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바빴는데 은혜를 알고 나니까 구원을 주시는 분도 예수님이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인데 우리는 자신을 너무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었고 자신밖에는 관심이 없을 뿐더러 자신을 신으로 섬기기에 바빴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헤롯왕의 이야기가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결국 헤롯이 어쩔 수 없이 세례요한의 목을 가져오게 함으로 자신을 왕으로 계속 인정해달라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무언의 요구를 하게 됩니다. 이 행동은 헤롯왕 자신이 스스로 왕의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자기 존재를 숭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기는 자기의 것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성전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자기가 주체가 아님을 아는 것이지요.

고전3:16-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힌다는 말씀은 자기를 하나님으로 삼고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멸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지자 되시는 예수님이 다가오셔서 우리의 죄를 낱낱이 드러내시면 ‘왜 하필 나에게 이러시냐?’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지금 생명을 거두어 가셔도 할 말이 없음을 고백하시고 오늘을 감사함으로 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 위를 걷게하신 예수님(86)  (0) 2017.05.22
오병이어보다 더 큰 기적(85)  (0) 2017.05.15
세례요한과 헤롯왕(84)①  (0) 2017.04.30
고향에서 배척당하심(83)  (0) 2017.04.24
새 것과 옛 것(82)  (0) 2017.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