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오병이어보다 더 큰 기적(85)

박성산 목사 2017. 5. 15. 15:54

오병이어보다 더 큰 기적

(마14:13-21)(85)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 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 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17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 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18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 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쫓는 중에 빈들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나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용기를 가지며 기도를 하게 되는데요. 오늘날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풍성한 물질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곤 합니다. 예수님께서 과거에도 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내게 기적을 베풀어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기적이 왜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신 분인데 과거에는 기적이 이루어지고 지금은 일어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혹시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가 보지 못해서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의문이 풀리는 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하는 증거는 이 땅에 누군가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을 봐서 틀림없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하여 궁금하다고 해서 우리편에서 하나님에게 다가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가 있는데요. 예수님을 배제하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본문과 같이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 입장에서만 받아들이면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나만을 위한 축복’으로 이해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내 마음대로 목표를 정해놓고 하나님의 기적이 임해서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니까 나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을 기적을 통해서 이루어주신다고 믿는 분들이 이러한 기적의 하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베푸시는 기적은 적어도 우리가 기대하는 기적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아셔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병을 고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니까 사람들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분이 나타났다고 예수님을 무작정 따라가는 중입니다. 그렇게 기적을 보려고 계속 따라가다 보니까 어느덧 빈들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 때 제자들과 백성들이 배가 고팠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곳은 허기짐을 마음대로 채울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빈들입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은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이 따라오는 사람들의 환경을 그들에게 익숙한 환경이 아니라 전혀 대책이 없는 환경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물위로 걷다가 물위에 있는 자신을 보고 놀람과 동시에 물속에 빠지게 된 경우와 같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예수 믿겠다고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10년이고 20년이고 한참 하다가 문득 자신을 보니까 전혀 원하지 않는 현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다 보면 바라는 소원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기적을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따라가다가 문득 ‘아 이게 아니구나. 예수님의 말씀은 좋긴 한데 현실과는 너무 다른 것 같네. 혹시 현실을 외면하면서 사는 것이 신앙이라고 혼돈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믿는 것이고 배가 고픈 것은 고픈 것인데 꿈과 현실이 너무 멀구나. 이런 삶이 맞기는 한건가?’ 하고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는 순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교 서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의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기적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사53: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는데 왜 우리가 나음을 입을까요? 예수님과 우리는 분리되어 있는 하나의 객체인데요. 그런데 이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기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배고픔밖에 모릅니다. 심지어 남편의 배고픔이 아내의 배고픔으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각자가 배고픔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찔림과 상함이 우리에게 평화와 나음을 가져다주는 연결됨이 바로 기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기적을 아는 사람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구나. 예수님의 아픔과 찔림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었는데 그 영생으로 사는 자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이구나’를 아는 것입니다.

 

요14:10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은 스스로 혼자 계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찔림과 상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생이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아무런 대가도 필요없이 그냥 얹혀지는 것입니다.

 

마4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네가 배가 고픈데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 돌을 떡으로 만들어서 배부르게 먹고 하나님의 일을 해도 늦지 않아. 그게 순서가 맞지 않느냐?’라고 합니다.

 

이런 시험은 늘 주위에 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다 이런 이야기이고 정치나 모든 관심사가 우선 떡이 있어야 그 다음에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아왔지요.

 

그런데 광야가 먹을 것이 없어서 광야가 아니라 생명의 말씀이 없어서 빈들에 놓여 있는 상태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적같은 기적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2만명을 배불리 먹은 것이 아니라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영생을 얻는 것이야말로 기적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가난하게 살다가 갑자기 많은 물질을 가지게 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허기가 지게 되어 있습니다. 밥을 아무리 배부르게 먹어도 잠시 후에는 또 배가 고픕니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살게 되는 것을 성경에서는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믿게 되고 너무나 감사하게 되는 변화가 여러분에게 일어났다면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긍휼의 기적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오병이어의 기적을 달라고 기도하지 맙시다. 빈들에 있는 자신을 돌아봐 달라고 간구하지 맙시다. 설사 응답이 된다고 해도 다시금 채워달라고 하는 욕심을 부리게 될 것입니다.

본문14절에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단지 예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김을 얻어서 영생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오병이어보다 더 큰 기적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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