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야 할 교회(마24:1-2)(142)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 너뜨리우리라
성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으면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 때문에 오셨고 앞으로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물어 보기도 하고 매달려야 하는 것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2사도들도 예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쳐주었지만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에 한 명도 남지 않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무서워서 숨어 있는 장소에 예수님이 먼저 다가가서 하시는 말씀이 요20:19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상의 두려움을 안고 살았을까요?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변화를 원하십니다. 변화가 되려면 본문에 나오는 말씀처럼 세상이 무너진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본문 1절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라고 기록되었는데 예수님은 무너지는 성전을 보시기 위해서 가셨는데 제자들은 성전을 보면서 ‘야~ 성전이 참 아름답구나. 이 아름다운 성전에서 영원히 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은가?’라며 감탄하며 성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감탄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성전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그러면 예수님이 성전을 무너뜨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성전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면 온 세상이 더 무너져도 하나님이 세우신 성전만큼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있으면 성직자가 있어야 하고 그에게 대우를 해주기 위해서는 십일조를 바쳐야 됩니다. 그러니까 성직자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신다’라고 하는 교육과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가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을 하는 목회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목사가 있어야 구원받는다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교회를 이끌고 설교하고 관리하는 지도자는 있어야 하니까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교회가 여러분을 구원하나요? 교회에 하루라도 나가지 않으면 허전함을 어찌할 바 모르는 신자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주를 위하여 봉사한다는 그럴듯한 말은 하고 있지만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속내는 숨길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와 연계되어 있는 사물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자신이 부자라고 믿는 사람은 몇 억을 주고 사야하는 외제차나 몇 십억을 주고 사야하는 고급 빌라에 살아야 자신의 체면이 선다고 착각하면서 살지요.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쉽게 사지 못하는 물건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믿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교회가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십니다.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지옥에 갈 것입니다. 교회에 아무리 충성해봤자 복음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입니다.
복음을 안다는 것은 복음만 증거하지 않는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성전을 바라보면서 감탄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그 성전을 무너뜨리겠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티투스 황제에 의해서 AD70년에 성전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 무너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복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데 눈에 보이는 성전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헌금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헌금을 교회에 바치는 것과 주님에게 바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교회에 헌금한 사람은 헌금을 하고 난 뒤에 자신이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얼마를 했으니까 하나님이 복 주실 거야. 정성껏 바쳤으니까 최소한 30배 이상을 주실 지도 몰라.’라고 하는 기대를 하고 헌금을 했다면 그 사람은 교회에 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주 조그만 댓가를 바라고 헌금한 것은 진정한 헌금이라고 보기 힘들지요.
하지만 주님에게 드린 성도는 헌금하고 난 뒤에 어느 과부와 같이 전 재산인 두 렙돈을 바친 후에 자신을 잊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헌금은 주님의 것을 주님께 감사함으로 드린 것뿐이지 댓가를 바라고 드리는 것은 주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아멘, 성전뿐만이 아니라 저도 무너지기를 원합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나의 아집과 욕심, 집착과 세상의 미련이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듯이 마음속에 있는 ‘이것만은 무너지면 안된다’고 하는 것들이 다 무너지시기를 바랍니다.
갈2:20에 보시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것이 사도바울이 말하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진정 교회인 것입니다. 신앙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잖아요. 성도는 벌써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내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면서 따라갈 뿐입니다.
참된 교회는 ‘성전을 무너뜨리우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님, 이 교회가 무너지더라도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곳이 진짜 교회인 줄 믿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교회의 역사,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만든 건물은 허물어져야하지 않겠습니까? 복음은 아랑곳없고 자기를 알아주는 교회, 큰 교회, 역사가 있는 교회, 목회자의 인격이 훌륭한 교회, 봉사를 많이 하는 교회, 자기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아서 헤매는 사람들은 그 성전을 무너뜨리겠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세상의 교회는 무너질 것이고 또한 무너져야 합니다. 그리고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성령을 받은 성도야말로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전으로써 예수님과 영원히 동고동락하는 주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의 끝을 알려주시는 예수님(144)① (0) | 2018.07.30 |
---|---|
세상 끝을 이끄시는 하나님(143) (0) | 2018.07.22 |
예루살렘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141) (0) | 2018.07.09 |
의로운 피가 다 돌아가리라(140) (0) | 2018.07.02 |
선지자를 죽인 자의 후손(139) (0) | 2018.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