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역사와 종말을 아는 성도(145)

박성산 목사 2018. 8. 13. 00:02

역사와 종말을 아는 성도

(마24:15-24)(145)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 다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 라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 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 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 라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오늘 말씀을 보면 큰 일이 난 것 같습니다. 산으로 도망을 가야하고 집에는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하고 얼마나 큰 환난인지 하나님께서 환난받는 날을 감해주시지 않으면 한명도 견뎌내지 못할 만큼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와중에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택한 백성까지도 미혹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다니엘이 예언한 다니엘서가 있고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시점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성령의 조명으로 우리 함께 차근차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종말로 이끄시는 것은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종말의 의미는 의와 불의가 갈라지는 것이고 택한 백성과 택함을 받지 못한 백성이 헤어지는 때이며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만백성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주를 받아서 지옥에 갈 사람들에게 종말의 끝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죄인이 영원히 갈라서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지금이라도 신앙생활을 잘하면 천국에 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이미 결론이 난 지 오래되었습니다.

 

사실은 우리도 저주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똑같이 죄짓고 잘난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우리가 복을 받아서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천국에 가는 성도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답니다. 무당같은 목사들은 신앙생활을 잘하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게 된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백성은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성도는 십자가의 삶을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혹시 다른 삶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기대를 아예 하지마세요. 그게 마음 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자기생명을 버리심으로 그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시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버리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 생명을 받은 자 즉, 은혜를 받은 백성은 요일3:16에 나오는 것처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른 형제를 위해서 죽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형제가 죽을 자리에 나를 죽이고 형제를 살리게 하는 일들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성도에게 주님이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고전4:10에 보시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비천해짐으로 말미암아 성도가 존귀해지고 바울이 미련함으로 그를 따르는 성도는 지혜롭고 바울은 주리고 목이 마르지만 그로 인하여 성도는 풍성함을 누리게 하는 것이 사도바울이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 바울이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무슨 잘못을 그리 많이 지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성도가 부족하고 잘못한 것을 사도바울의 몫으로 이전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대신 희생하고 성도가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한 것입니다.

 

고후4:12에서도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사망이 날마다 죽게 하시는 역사하심은 사도바울에게 있고 그로인하여 오히려 성도들이 날마다 생명을 얻는 길로 종말의 때를 주님이 인도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도는 주님이 그냥 주신 은혜만 챙기고 편안하게 살 수 없습니다. 끝까지 따라오셔서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심을 확인해주실 것 뿐 아니라 ‘너도 십자가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과 이웃이 있고 친구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들의 삶이자 사도들의 삶이었고 우리의 삶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보셔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저주받아야 할 사람은 세상이 영원하기를 바랄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인 형제의 죄 값인 고난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16절에 보시면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라고 나옵니다.

 

다니엘서를 보시면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세상역사의 시나리오가 나오는데 역사와 묵시가 섞여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있었던 바벨론, 메대파사, 헬라, 로마라고 하는 나라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실제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 뿐 아니라 아무리 강한 나라일지라도 그 끝은 멸망인 것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결론은 다니엘이 살고 있었던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의 온 세상나라는 이 바벨론의 후손으로 보는 겁니다. 미국, 유럽, 일본,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모든 나라가 바벨론류라는 말입니다. 이 바벨론의 속성을 다니엘이 보았는데 바로 큰 신상이었습니다.

 

그 큰 신상의 머리는 금으로 되어있고 발은 한쪽에는 진흙이요 다른 한쪽은 철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부터 시작하여 나라의 융성함이 점점 힘을 잃어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에서 돌이 날아와서 그 큰 신상의 발을 치자 발 위에 있는 인류의 역사가 넘어지고 돌은 태산을 이루는데 그 산은 사람이 만들어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다시는 무너짐이 없는 인자의 나라가 설 것이라고 단2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신상의 머리는 바벨론을 가리키는데 어깨로부터 발까지 메데파사, 헬라, 로마라고 볼 수 있는데요. 오늘 본문의 15절의 말씀을 근거로 볼 때에 다니엘이 말한 예언을 예수님이 행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헬라를 세운 알렉산더 대왕이 젊은 나이에 열사병으로 죽고 난 후에 장수 4명이 나라를 네 등분해서 왕을 차지하는데 톨레미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셀류쿠스는 시리아와 바벨론, 카산더는 터키와 이란과 인도, 리시마쿠스는 드레이스와 비두니아를 통치하게 됩니다.

 

15절에 나오는 거룩한 곳 즉, 성전에 흉측한 제우스상을 세우고 더러운 돼지의 피를 발라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가증된 짓을 한 사람이 시리아의 장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서에 나오는 이 일이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더럽혀지게 함으로써 성전을 더 이상 우상으로 삼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아무리 제사를 잘 드려도 예수님이 빠진 제사는 우상에게 제사드리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방인으로 하여금 성전을 더럽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죄를 근거로 심판하십니다. 거룩한 곳인 성전이 더렵혀지고 무너질 때는 죄가 있다고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심판의 목적이 우리를 죽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심판은 필요한 것입니다. 죽었던 자가 죄 용서함을 받고 천 번을 지옥에 가도 마땅한 죄인이 주님이 흘려주신 사랑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고 영생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심판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으로부터 나라를 잃어서 약 2000년 동안 나라없이 살아온 백성입니다. 우상을 섬긴 댓가로 하나님의 징치를 받은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나라를 빼앗긴 수많은 세월이 종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볼 때에 세상에는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가득한데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언제라도 산으로 도망갈 수 있는 준비, 필요한 것 때문에 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는 준비, 뒤를 돌아보지 않을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오늘부터 말입니다. 오늘이 종말의 날이니까요.

 

따라서 여러분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셨으면 세상에 더 이상 연연해하지 마시고 환난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마시고 나 같은 인생이 구원받았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