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흔한 병이 되었습니다만 우울증이라든가 공황장애나 스트레스성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지요. 그들은 “나는 살아야 된다.”는 절박함과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환경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얻어진 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 마음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치료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망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바꾸면 된다고 봅니다.
기도할 때도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고 실패를 위해서 한번 해보세요. “주여 오늘도 망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거지가 무슨 걱정이 필요하겠습니까? 아파트청약걱정을 하겠습니까? 월세걱정을 하겠습니까? 코로나걱정을 하겠습니까?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사람이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염려한다는 것은 살아야겠다는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자기만족이라는 목적을 향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말하기를 욕망은 다른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산에서 혼자 살면 욕심 부릴 것이 별로 없지요. 하루 세끼만 먹으면 만족하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로 나오면 나보다 잘났고 잘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삶의 목적을 자신보다 잘나고 잘사는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비교가 되니까요. 기죽으면서 살기 싫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좀더 나은 직장, 좀 더 많은 물질, 좀더 높은 직위, 좀 더 넓은 아파트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살아야 하니까요.
“하면 된다. 주안에서 하면 된다.”라고 교회에서 가르치니까 정신병을 키우고 있어요. 하면 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안 되니까 초조함과 조급함에 더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입니다. 이 또한 살아야 된다는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게 무슨 교회입니까? 살아야 된다고 욕심을 부추기는데 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오징어 게임이라는 영화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돈을 위해서 내 목숨을 담보로 거는 게임 말입니다. 남을 이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뭉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살벌하게 살면서 “오늘 살았으니까 내일도 열심히 하면 될 거야”라며 자신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교회도 합세를 해서 덩달아 박수를 치면서 “주 안에서 하면 된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계시록 강해 67강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