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강해

낙태된 아이보다 못한 인생(26)

박성산 목사 2023. 4. 16. 22:07

낙태된 아이보다 못한 인생(6:1-6)

 

1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 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2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 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3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 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 나니

4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 둠에 덮이니

5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6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오늘 말씀은 아무리 많은 재물과 부귀영화를 누리고 장수한다고 할지라도 엄마 배 속에서 죽은 아이보다 못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살이가 얼마나 허망하면 낙태된 아이보다 못하다고 말씀하실까요? 우리는 빛도 못 보고 죽은 아이라서 불쌍하게 여기는데 말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인데 969살까지 살았지요. 그런데 그 두 배인 2000년을 산다고 할지라도 햇빛도 보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 아이보다 나을게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낙태된 아이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면 살수록 괴로움과 한숨밖에 없어요. 근데 죽기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면 웬만한 힘들고 괴로움은 그냥 넘겨버릴 수가 있는 것이지요. 어차피 죽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빈손으로 갈 것이니까요.

 

사람이 이러한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허무한 것을 쫒고 남들처럼 되지 못하면 실패한 것처럼 여기니까 자괴감에 빠지곤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고 합니다.

5:28-29절에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24:15절에는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26:19절에는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이 말씀의 공통점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다 죽고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죽는다고 끝난 것이 아니에요. 잠에서 깨어나듯이 다시 살아날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날을 기다리며 이 땅에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어떻게 살았고 얼마나 많이 모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죽고 난 후에 다시 살아서 어떻게 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본문의 요지는 한마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성공이나 낙을 누리는 것에 의미를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나는 잘살아야 해, 성공해야 해, 가치있고 보람되게 살아야 해,’라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어차피 허무한 일이고 낙태된 아이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제가 즐겨보는벌거벗은 한국사라는 프로가 있는데요. 이번 주에는 김만덕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나오더군요. 김만덕이 어릴 때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시자 시름시름 앓다가 그의 어머니도 돌아가십니다.

 

그러자 삼 남매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김만덕은 은퇴한 기생의 수양딸로 가서 관기가 되는데 춤과 악기와 시나 그림에 대해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그 돈을 종잣돈으로 사업을 했는데 아주 크게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1795년에 제주도에 태풍이 불어서 가뜩이나 양식이 부족했던 차에 제주도민들은 굶어 죽는 사람들이 그 해에 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만덕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서 서울에서 쌀을 구해서 제주도민을 구했고 정조로부터 벼슬까지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전 재산을 남을 위해서 헌납한 일은 참으로 훌륭하지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분은 무덤에 있습니다.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부활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살아온 삶을 사람들은 존경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허무하고 엄마 배 속에서 죽은 아이보다 못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신앙을 가진 성도를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9:5-6절에 보시면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이 말씀의 내용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인데너희가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정직하거나 의롭거나 이방인보다 나아서가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니까 너희도 이방인들과 똑같이 목이 곧은 백성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롭지도 않고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이유는 원래 목이 곧아서 교만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밖에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으면 도저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없는 백성임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사는 이유와 방식입니다. 어렵더라도 좀 더 들어보세요.

 

신앙으로 사는 성도는 자기의 의로움을 뽐내거나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목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바 없이 죄만 짓는 죄인을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능력을 드러내고 높이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높이기 위해서이지요.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대단하시면 죄인의 생각과 입술과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십자가의 피로 가려 주시는가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는 줄 압니다.

 

90:10-11절에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시편의 기자는 70에서 80년의 인생을 살면서 남은 것은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것은 바둥바둥하면서 살아왔지만 죄지은 것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슬픔만 남게 되었는데 그 죄인에게 주님의 노여움과 진노를 누가 피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 사람은 지금 죽어도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죄지은 것밖에 없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허무한 인생을 살았으니까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살게 하십니다. 왜일까요? 하루하루가 선물인 것을 알게 하시려고...

 

그 하루가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믿는다면 지금도 그 분이 주시는 용서와 은혜를 드러내기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드러내는 것이 바깥에서 예수 믿으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주신 오늘을 주님의 은혜만 의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년을 살아도 자기를 드러내는 인생은 수고와 슬픔만 남을 것이고 오늘만 살아도 주님의 은혜로만 사는 성도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마 배 속에서 죽은 아이가 수고와 슬픈 세월의 이천년을 사는 인생보다 낫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만 살아도 주님께 감사하면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도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과 다투는 것(28)  (0) 2023.05.01
채울 수 없는 욕망(27)  (0) 2023.04.24
누구의 몫인가(25)  (0) 2023.04.09
큰 불행을 주시는 분(24)  (0) 2023.04.02
만족과 불만(23)  (0) 2023.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