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42절에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지금 사람들이 비웃으면서 하는 말이 ‘말로는 무슨 말을 못해? 지금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현실에서 당장 자신을 구원해봐. 그러면 우리가 믿을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평소에 어떤 하나님을 원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원하지 않는 현실에서 내가 원하는 현실로 만들어 줄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기대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고대하는 것이 사람들의 본능이라는 것입니다.
가게 매출도 어제보다 점점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장사를 하지 않습니까? 학생들도 이번 시험보다 다음 시험에 성적이 좀 더 오르기를 바라면서 공부를 하잖아요. 이와같이 사람의 본능은 ‘매일 새로워지는 나’가 되기를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표어가 날마다 새로워지는 나를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요. 소위 성화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 인격이 바뀌고 죄를 점점 덜 짓고 거룩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 취지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 전혀 상관이 없고 인간의 본능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니체라는 철학자는 인간의 자아는 두 개로 나누는데 새로워 지고자하는 자아와 새로움을 당하는 자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바닷가에 파도가 계속 밀려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매일 새로운 나를 만들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며 행복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인생관이 신앙과 접목이 되어서 자꾸만 발전된 신앙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 신앙인의 목표라고 알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강해 171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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