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예수님을 장사지낸 아리마대 요셉(174)

박성산 목사 2019. 4. 24. 22:09

예수님을 장사지낸 아리마대 요셉

(마27:57-61)(174)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 주라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보통 사람들은 부모님이나 친지의 장사를 치른 후에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더라도 산사람은 살아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은 돌아가신 예수님에게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추측컨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혹시라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죽었을까 하고 의심할까봐 완전히 무덤에 갇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부활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각자 맡은 역할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인 우리야 장군을 최전방으로 보내서 죽게 만듭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다윗의 죄를 지적합니다. 그때 다윗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얻습니다.

 

이와같이 다윗이 자기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지적당함으로 용서와 은혜를 입는 방법이외에는 부활의 세상에 참여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따라서 다윗에게 임하였던 하나님께서 동일한 방법으로 모든 성도들에게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라고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는 교회를 실컷 잘 다니다가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시 51편에서 다윗이 나단 선지자에게 책망을 받은 후에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원하시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상한 심령이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것을 말하는데 마치 예수님의 무덤에 함께 장사되어도 될 만큼 전혀 가치가 없는 죄인인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상한 심령을 가진 성도는 세상의 모든 것은 나의 의지나 계획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으로만 움직여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산자 같은데 죽은 자이고 알면 죽은 것 같은데 진짜 산자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상한 심령을 가진 성도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표현하고 있는데 갈 2:20절에 보시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말씀은 부활의 세계가 있음을 전제로 해서 그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십자가의 증거를 드러내면서 살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죄를 지적 하시면서도 용서하시고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성도라는 것입니다.

 

롬 6:3-4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우리의 인생은 예수님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합하여’라는 말씀이 3번 나오는데 우리가 예수님에게 합하여졌기 때문에 그 분의 뜻대로만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마치 주인과 종같이 말입니다.

 

이러한 복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오직 아리마대 요셉은 세마포로 감싸고 세상에서 이 분의 죽으심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우리의 생명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간직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도 아리마대 요셉처럼 예수님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서 부활의 아침을 맞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